1997년 9월 16일, 이순신은 13척의 전선(戰船)으로 수 백 척의 일본 전선을 격파했다.
이른바 명량해전이다. 이순신은 그 명량해전에 대해 기록을 남겼다.
1597년의 일기는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몰라도 내용이 일부 차이가 나는 두 권이 있다.
그 중 일부 시기의 일기는 중복돼 있다. 명량해전 날의 일기도 두 번 기록돼 있다.
중복된 그 날의 일기를 통해 명량해전의 모습을 자세히 알 수 있다.
관례에 따라 『정유년 1』과 『정유년 2』로 명량해전날의 일기를 보면 다음과 같다.
▲ 『정유년 1』 1597년 9월 16일
이른 아침에 망군(望軍)이 와서 보고하기를, “무려 200여 척의 적선이 명량을 거처 곧바로 진치고 있는 곳으로 향해 온다”고 했다.
여러 장수를 불러 거듭 약속할 것을 밝히고 닻을 올리고 바다로 나가니, 적선 133척이 우리의 배를 에워쌌다.
지휘선이 홀로 적선 속으로 들어가 포탄과 화살을 비바람같이 쏘아 댔지만 여러 배들은 바라만 보고 진군하지 않아 일을 장자 헤아릴 수 없었다.
배 위에 있는 군사들이 서로 돌아보며 놀라 얼굴빛이 질려 있었다.
나는 부드럽게 타이르며, “적이 비록 1,000척이라도 감히 우리 배에는 곧바로 덤벼들지 못할 것이니, 조금도 동요하지 말고 힘을 다해 적을 쏘아라”고 말했다.
그리고서 여러 배들을 돌아다보니, 한 마장(馬場) 쯤 물러나 있었고, 우수사 김억추(金億秋)가 탄 배는 멀리 떨어져 있어 묘연했다.
배를 돌려 곧장 중군(中軍) 김응함(金應 )의 배로 가서 먼저 목을 베어 효시하고자 했으나, 내 배가 머리를 돌리면 여러 배들이 차츰 더 멀리 물러나고, 적선이 점차 다가와서 일의 형세가 낭패될 것 같았았기에,중군의 영하기(中軍令下旗)와 초요기(招搖旗)를 세우게 했다.
이에 김응함의 배가 점차 내 배로 가까이 오고, 거제 현령 안위의 배도 왔다.
내가 뱃전에 서서 직접 안위를 불러 말하기를, “네가 억지 부리다 군법에 죽고 싶으냐?”고 했고, 다시 불러 “안위야, 군법에 죽고 싶으냐? 물러나 도망가면 살 것 같으냐?”고 했다.
이에 안위가 황급히 적과 교전하는 사이를 곧장 들어가니, 적장의 배와 다른 두 척의 적선이 안위의 배에 개미처럼 달라붙었고, 안위의 격군 7~8명은 물에 뛰어들어 헤엄치니 거의 구할 수 없었다.
나는 배를 돌려 곧장 안위의 배가 있는 곳으로 들어갔다.
안위의 배 위에 있는 군사들은 죽기를 각오한 채 마구 쏘아 댔고, 내가 탄 배의 군관들도 빗발치듯 어지러이 쏘아 대어 적선 2척을 남김없이 모조리 섬멸했다.
하늘이 아주 크게 도와준 것이다.
우리를 에워쌌던 적선 30척도 부서지니 모든 적들이 저항하지 못하고 다시는 침범해 오지 못했다.
그곳에 머무르려고 했으나 물이 빠져 배를 대기에 적합하지 않으므로 건너편 포(浦)로 진을 옮겼다가 달빛을 타고 다시 당사도(唐 島)로 옮겨서 정박해 밤을 지냈다.
▲ 『정유년 2』 1597년 9월 16일
이른 아침에 별망군(別望軍)이 와서 보고하기를 “적선들이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명량을 거처 곧장 진지를 향해 온다”고 했다.
곧바로 여러 배에 명령하여 닻을 올리고 바다로 나가니, 적선 130여척이 우리 배들을 에워쌌다. 여러 장수들은 스스로 적은 군사로 많은 적과 싸우는 형세임을 알고 회피할 꾀만 내고 있었다.
우수사 김억추가 탄 배는 이미 두 마장 밖에 있었다.
나는 노를 급히 저어 앞으로 돌진하며 지자(地字)·현자(玄字) 등의 각종 총통을 마구 쏘아 대니, 탄환이 나가는 것이 바람과 우레처럼 맹렬했다.
군관들은 배 위에 빽빽이 들어서서 화살을 빗발치듯 어지러이 쏘아 대니, 저의 무리가 저항하지 못하고 나왔다 물러갔다 했다.
그러나 적에게 몇 겹으로 둘러싸여 형세가 장차 어찌 될지 헤아릴 수 없었다.
배 안에 있는 사람들은 서로 돌아보며 얼굴빛이 질려 있었다.
나는 부드럽게 타이르기를, “적선이 비록 많다 해도 우리 배를 바로 침범하지 못할 것이니 조금도 마음 흔들리지 말고
더욱 심력을 다해서 적을 쏘아라”라고 했다.
여러 장수의 배를 돌아보니 먼 바다로 물러가 있고, 배를 돌려 군령을 내리려 하니 적들이 물러간 것을 틈타 더 대들 것 같아서 나가지도 물러나지도 못할 형편이었다.
호각을 불게하고 중군에게 명령하는 깃발을 세우고 또 초요기를 세웠더니, 중군장 미조항 첨사 김응함의 배가 차츰 내 배에 가까이 왔는데, 거제 현령 안위의 배가 먼저 이르렀다.
나는 배 위에 서서 직접 안위를 부르며 말하기를, “안위야, 군법에 죽고 싶으냐? 네가 군법에 죽고 싶으냐? 도망간다고 어디 가서 살 것이냐?”고 말하였다.
그러자 안위도 황급히 적선 속으로 돌입했다.
또 김응함을 불러서 말하기를, “너는 중군장이 되어서 멀리 피하고 대장을 구하지 않으니, 그 죄를 어찌 면할 것이냐?
당장 처형하고 싶지만 적의 형세가 또한 급하므로 우선 공을 세우게 해주마”라고 했다.
그리하여 두 배가 먼저 교전하고 있을 때 적장이 탄 배가 그 휘하의 배 두 척에 지령하니, 한꺼번에 안위의 배에 개미처럼 달라붙어서 기어가며 다투어 올라갔다.
이에 안위와 그 배에 탄 군사들이 각기 죽을 힘을 다해서 혹 몽둥이를 들거나 혹 긴 창을 잡거나 혹은 수마석 덩어리로 무수히 난격하였다.
배 위의 군사들이 거의 기운이 다하자 나는 뱃머리를 돌려 곧장 쳐들어가서 빗발치듯 마구 쏘아 댔다.
적선 세 척이 거의 뒤집혔을 때 녹도 만호 송여종, 평산포 대장 정응두의 배가 잇달아 와서 협력하여 적을 쏘아 죽이니 한 놈도 살아남지 못했다.
항복한 왜인 준사는 안골에 있는 적진에서 투항해 온 자인데, 내 배 위에 있다가 바다를 굽어보며 말하기를, “무늬 놓은 붉은 비단옷 입은 자가 바로 안골진에 있던 적장 마다시(馬多時)입니다“라고 말하였다.
내가 무상(無上) 김돌손을 시켜 갈고리로 낚아 뱃머리에 올리게 하니, 준사가 날뛰면서 ”이 자가 마다시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래서 바로 시체를 토막 내라고 명령하니, 적의 기세가 크게 꺾였다.
우리의 여러 배들은 적이 침범하지 못할 것을 알고 일시에 북을 울리고 함성을 지르며 일제히 나아가 각기 지자·현자 총통을 쏘니 소리가 산천을 뒤흔들었고, 화살을 빗발처럼 쏘아대어 적선 31척을 쳐부수자 적선들은 후퇴하여서 다시는 가까이 오지 못했다.
우리의 수군이 싸움하던 바다에 정박하고 싶었지만 물살이 매우 험하고 바람도 역풍으로 불며 형세 또한 외롭고 위태로워
당사도로 옮겨 정박하고 밤을 지냈다.
이번 일은 실로 하늘이 도와준 일이다.
이 일기는 이순신 자신이 남긴 명량해전의 모습이다.
이 일기만큼 자세한 기록은 없다. 한산대첩과 같이 전투과정의 전모를 기록한 장계가 전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일기의 내용을 보면 그동안 논란이 있었던 쇠사슬을 이용한 전투도, 거북선을 이용한 전투 기록도 나오지 않는다.
순수하게 일부 전선으로 일본 전선을 맞아 당당하게 싸우는 모습만 나온다.
[생활/이슈] - 맡은 일은 책임을 다해 철저히 하라 - 이순신 리더의 자격을 말하다 4편
<진심진력-삶의 전장에서 이순신을 만나다>란 책을 쓴 박종평 선생님께서 쓴 기고문입니다.
박종평님께 허락을 구하고 제 블로그에 소개하고자 포스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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