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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리더의 자격을 말하다 1편

오늘 소개해드릴 글은 <진심진력-삶의 전장에서 이순신을 만나다>란 책을 쓴 박종평 선생님께서 쓴 기고문입니다.

박종평님께 허락을 구하고 제 블로그에 소개하고자 포스팅합니다. 


* 아비 이순신의 통곡

 

4월 28일은 이순신 장군이 탄생한지 469주년이 되는 날이다. 세월호의 비극을 지켜보면서 이순신을 떠올리고,

또 더욱 그리워할 수밖에 없는 것은 필자가 이순신을 공부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1597년 9월 16일 이순신은 명량해협에서 13척의 전선으로 133척의 일본 전선과 대결해 기적과 같은 승리를 일구었다.

그 명량해협에서 30km 떨어진 곳이 세월호의 비극이 일어난 맹골수도(孟骨水道)이다.

400년 전의 이순신은 그곳을 생명의 바다, 기적의 바다로 만들었지만,

지금의 우리는 죽음의 바다, 비극의 바다, 통곡의 바다로 만들었다.


《난중일기》에는 그가 생명의 바다를 만드는 과정이 아주 자세하다.

그의 일기 속으로 들어가 기적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모습을 보자.

 


◎ 1597년 9월 15일.  

맑았다. 밀물 때에 맞춰 장수들을 거느리고 우수영(右水營) 앞바다로 진(陣)을 옮겼다.  

벽파정 뒤에는 명량(鳴梁)이 있는데, 적은 수의 수군으로 명량을 등지고 진(陣)을 쳐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장수들을 불러 모아 약속하며 말하기를,  

"병법에서 '반드시 죽고자 하면 살고, 반드시 살려고 하면 죽는다(必死則生 必生則死)'고 했고,  

또 '한 사나이가 길목을 지키면, 천명도 두렵게 할 수 있다(一夫當逕 足懼千夫)'고 했는데,  

이는 오늘의 우리를 두고 하는 말이다.  

너희 여러 장수들이 조금이라도 명령을 어긴다면, 

즉시 군율로 다스려 조금도 용서치 않을 것"이라고 거듭 엄하게 약속했다.  

이날 밤 신인(神人)이 꿈에 나타나 지시하며 말하기를  

"이렇게 하면 크게 이기고, 이렇게 하면 패할 것"이라고 했다. 

 

◎ 1597년 9월 16일. 맑았다.  

이른 아침에 특별 정찰군이 들어와서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적선이 명량(鳴梁)으로 들어와  

곧바로 진(陣)을 친 곳으로 향해 오고 있다"고 했다.  

즉시 여러 배에 명령을 내리고, 닻을 올리고 바다로 나갔더니 적선 130 여척이 우리의 배들을 둘러쌌다.  

장수들은 스스로 적은 수로 많은 적과 싸우는 상황이라고 계산하고,  

편안히 살기 위해 회피할 계획을 꾸밀 생각만 하고 있었다.  

우수사 김억추가 탄 배는 이미 두 마장(馬場) 밖에 있었다.  

나는 노를 재촉해 앞으로 돌진하면서 어지럽게 쏘아댔다.  

지자․현자 등 각종 총통 등을 바람이 불고 천둥이 치는 듯 쏘았다.  

군관 등은 배 위에서 빽빽이 서서 화살을 빗발치듯 어지럽게 쏘았다.  

적의 무리들은 감히 대들지 못하고 다가왔다가 물러갔다가 했다.  

그러나 적에게 몇 겹으로 둘러싸여 있어 일이 앞으로 어떻게 될지 예측할 수 없었다. 

 배에 있는 사람들은 서로 바라보며 놀라서 얼굴빛이 파랗게 질려있었다. 

나는 부드럽게 논(論)하며 설명하면서 말했다.  

"적선이 비록 많지만 곧바로 덤벼들지 어렵다.  

조금도 마음이 흔들리지 말고, 더욱 더 마음과 힘을 다해 적을 쏘고 또 쏘아라."  

여러 배들을 돌아다보니, 먼 바다로 물러나 있었다.  

배를 돌려 군령을 내리고 싶었지만,  

여러 적선들이 그 틈을 노려 더 덤벼들 수 있어 오도 가도 못하는 난처한 상황이었다.  

그래서 나각을 불게하고, 중군(中軍) 영하기(令下旗)를 세우게 했고, 또 초요기(招搖旗)를 세우게 했다.  

곧바로 중군장 미조항 첨사 김응함의 배가 내 배에 가까이 점차 다가왔을 때, 거제 현령 안위의 배가 먼저 왔다.  

나는 뱃전에 서서 직접 안위를 불러 말했다. 

"안위야,! 군법에 죽고 싶으냐? 안위야! 군법에 죽고 싶으냐? 도망가서 산다면 어디에서 살 수 있겠느냐?"  

안위는 몹시 당황해 적선 속으로 돌진해 들어갔다.  

또한 김응함을 불러 말했다.  

"너는 중군(中軍)인데도 멀리 피해 대장(大將)을 구하지 않으니 그 죄를 어떻게 면할 수 있겠느냐?  

당장 처형하고 싶지만 적의 상황이 또한 급하니 일단 공(功)을 세우게 해주마."  

그래서 두 배가 먼저 적진으로 쳐들어갔을 때,  

적장이 탄 배가 그 휘하의 배 2척을 시켜 한꺼번에 안위의 배에 개미처럼 달라붙어 기어가며 앞다투어 올라갔다.  

안위와 그 배위의 사람들이 각자 죽을 힘을 다해 혹은 몽둥이를 들거나, 

혹은 긴 창을 잡거나, 혹은 수마석으로 무수히 어지럽게 쳐댔다.  

배 위의 사람들이 그 힘이 다했을 때 나는 뱃머리를 돌려 곧바로 들어가 빗발치듯 어지럽게 쏘았다.  

적선 3척이 거의 뒤집어졌을 때 녹도 만호 송여종, 평산포 대장 정응두의 배가 뒤쫓아 와  

힘을 합쳐 쏘아 죽이니 살아 움직이는 적이 하나도 없었다.  

 …

우리의 여러 배들은 적이 다시 침범하지 못할 것을 알고 한꺼번에 북을 울리고 함성을 지르며 

일제히 전진하며 지자포․현자포를 쏘니 그 소리가 바다와 산을 뒤흔들었고, 화살도 빗발치듯 쏘았다.  

적선 31척을 쳐서 깨뜨리자 적선들은 피해서 물러갔고, 다시는 가까이 오지 않았다. 

 …  

이번 일은 실로 하늘이 도운 것이다. 

 

리더 이순신은 이번 세월호의 비극에서 나타난 것처럼 가장 먼저 도망친 선장과 달랐다.

우왕좌왕하는 공무원들과 달랐다. 호통만치는 리더와 달랐다.

이순신은 위기 속에서 한 치의 흔들림 없이 자신의 일을 했다.

맨 앞에서 자신의 목숨을 던져 백성들 살리고, 조선을 구했다.

기적과 같은 승리를 한 뒤 기쁨이 채 가시기도 전인 불과 한 달도 되지 않아 비극적인 소식을 듣는다.

 

◎ 1597년 10월 14일.  

맑았다. 밤 2시에 꿈을 꾸었다. 내가 말을 타고 언덕 위로 가고 있었는데,  

말이 발을 헛디디어 냇물 가운데로 떨어졌으나 거꾸러지지는 않았다.  

막내아들 면을 끌어안을 듯한 모습을 하다가 잠에서 깼다. 이것이 무슨 조짐(兆)인지 모르겠구나.  

… 저녁에 어떤 사람이 천안에서 와서 집안 편지를 전해 주었다.  

 봉투를 열기도 전에 뼈와 살이 먼저 떨렸고, 마음도 아찔하고 어지러웠다.  

대충 겉봉을 뜯고 보니, 속봉투 위에 아들 열의 글씨로, 겉면에 '통곡(慟哭)' 두 글자가 써 있었다.  

아들 면이 전사한 것을 마음으로 알았고, 나도 모르게 간담이 떨어지고, 실성해 통곡, 또 통곡했다.  

하늘이 어찌 이같이 어질지 못한가. 간담이 타고 찢어졌다. 타고 찢어졌다.  

내가 죽고 네가 사는 것이 이치에 맞는 것인데,  

네가 죽고 내가 살았으니 이치가 거슬리는 것이 어디 이럴 수 있나.  

하늘과 땅이 캄캄하고 대낮의 해조차 색깔이 변했구나.  

불쌍한 내 어린 아들아! 나를 버리고 어디로 갔느냐?  

남달리 영특해 하늘이 세상에 머물지 않게 한 것이냐?  

내가 지은 죄 때문에 그 화(禍)가 네 몸에 미친 것이냐?  

지금 내가 세상에 살아있어도 앞으로는 누구를 의지하겠느냐?  

죽어서 지하에 가서 너와 함께 지내고, 같이 울고 싶구나.  

하지만 네 형, 네 누이, 네 어머니 또한 의지할 곳이 없어 아직은 참고 연명해야 하겠지만,  

마음은 죽고 껍질만 남아 울부짖을 뿐이다. 울부짖을 뿐이다.  

하룻밤이 1년 같구나. 하룻밤이 1년 같구나.  

이날 밤 10시에 비가 내렸다.  

 

서울에서 후퇴하던 일본군이 아산을 지나가다가 이순신의 셋째 아들 면과 마주했고,

면은 이순신의 아들답게 일본군과 싸우다 전사했던 것이다.

아비 이순신의 마음은 그의 일기처럼 찢어졌다.

무능한 기성세대가 만든 비극으로 이 시대의 수많은 아비와 어미의 통곡처럼 이순신도 통곡했다.

그러나 리더였기에 제대로 실껏 울 수도 없었다.

 

◎ 1597년 10월 16일. 맑았다.  

우수사와 미조항 첨사를 해남으로 보냈다. 해남 현감도 보냈다.  

나는 내일이면 막내 아들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지 4일째인데도  

마음 놓고 통곡도 할 수 없었기에 염간 강막지의 집으로 갔다.  

 

장수였기에 부하와 군사들 앞에서 울 수 없었기에 몇 일 동안 참다가 바닷가 외진 곳으로 가서 울었다.

죽은 자식을 가슴에 묻고 또 울었다.

 

◎ 1597년 10월 19일. 맑았다. 새벽 고향집의 노비 진이 내려온 꿈을 꿨다.  

죽은 아들이 생각나 통곡했다. …  

어두울 무렵에는 코피가 한 되 넘게 흘러내렸다.  

밤에 앉아 생각하니 눈물이 났다. 어떻게 말로 다 할 수 있을까.  

지금은 죽은 혼령이 되었으니 불효가 끝내 여기까지 이른 줄 어떻게 알까.  

비통해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것을 억누를 수 없다. 억누를 수 없다. 

 

아비 이순신의 통곡이 귓전을 맴돈다.

현실의 수많은 아비와 어미들의 통곡이 가슴을 찢는다.

리더 이순신처럼 자신의 업(業)에 최선을 다할 때다.

또 지금의 분노를 식혀서는 안된다.

 이제는 거짓과 관행이라는 괴물과 싸울 때다.

더 이상의 비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더 이상 이 땅에 비극이 일어나지 않길 바라며....